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생애 (문단 편집) ===== 경제성장 거품론 ===== 큰 업적 중 하나라는 경제 성장 또한 단순히 전 세계적 호황기에 집권한 덕이다. 룰라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은 사실상 전임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대통령의 말기에 수립된 정책을 수정없이 그대로 이어간 것이 룰라 정부에 들어서며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도 비판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별 다른 대안이 없는지라 걍 버로우. 브라질 자국 내 산업 성장으로 인한 경제성장이 아닌 '''급성장하는 중국으로의 원자재 수출이 늘어나는 덕분에''' 브라질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룬 것이라 자원 수출에 기대는 부실한 경제 구조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받는다. [[http://atlas.cid.harvard.edu/explore/stacked/export/bra/all/show/2003.2010.2/|2003~2010년간]]의 브라질 수출 품목을 비교해 보면 전체 수출에서 전자기계(9→7%), 교통장비(14→9%)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하였으며, 광물자원(14→29%)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다만 [[브라질]]이 '영원한 미래의 나라(그러니까 잠재력은 큰데 발휘를 못해 늘 미래에 성장할 거라는 말만 듣는다는 소리)'라고 불렸다는 점을 보면, 이런 기회를 잘 잡은 것도 나름의 능력이라 할 수도 있다. 사실 4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기까지 브라질은 나름대로 고도성장을 거두던 국가이기는 했다. 경제적으로 막장포스를 뿜기던 국가는 결코 아니었다. 50년대와 60년대 전반기에는 인플레 문제가 있었고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빈부격차가 급속히 확대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때는 나름 공업화에 성공하고 인구도 급증하여 나름 강대국이 될 듯하기는 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와 80년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엄청난 외채를 짊어지는 바람에 브라질은 경제적으로 막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공업화도 그 여파로 지지부진해지며 그 후유증이 2000년대 초반까지 갔다. 후임자인 지우마 호세프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룰라에게 책임을 묻는 의견도 있다. 경제구조 개선을 미루면서까지 월드컵과 올림픽 개최에 심혈을 기울여 사회복지 시스템의 확충이 늦어졌다. 2000년대 후반에 유전개발로 (중동 산유국이나 베네수엘라, 노르웨이처럼) 복지비용을 충당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개발을 하려다보니 심해유전이라 채굴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채굴작업이 지지부진했다.게다가 2014년 하반기부터 사우디의 대대적인 증산으로 석유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채굴해봐야 손해만 보는 구조가 되어버린다.이는 사우디에서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8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북해유전을 무기삼아 가격자유화를 선언하자 사우디에서 석유생산량을 대대적으로 늘려서 유가를 폭락시키는 방법으로 영미권의 석유업체를 말끔히 말려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 결국 복지확충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얘기가 되어버렸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시위대가 문제를 제기한 사회복지 확충에 드는 비용 마련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호세프이 지지율은 지지율대로 떨어진다. 거기에다가 공업 발달도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바람에 브라질은 저성장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 전 세계에 중계된 2014 브라질 월드컵 전후의 크고 작은 시위와 소요사태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 결국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자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철광석 등 원자재의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고공행진하던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떨어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